르네상스 시대의 베네치아 산 모이세 성당은 카지노의 성지였습니다.
베네치아 카지노의 완전한 종말
리도토 카지노의 폐장이 베네치아 카지노의 종말은 아니였습니다, 또 다른 카지노의 시작을 의미할 뿐. 기존의 도박 중심지였던 산모이세(San Moise)로부터 도박은 100여 곳이 넘는 불법 도박장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본래 카지노라는 곳은 작은 규모의 사람들이 조그만 공간, 클럽하우스를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공공 카지노 리도토의 폐장은 이러한 소규모 카지노의 증가를 초래하였고 17세기 말, 베네치아 내 이와같은 소규모 카지노가 136개소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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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유럽 대다수의 도시에서 이러한 카지노들이 각광받았으나, 리도토 카지노만큼의 영광은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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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나폴레옹의 점령으로 베네치아는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흡수되었으며, 이후 장기간의 쇠퇴가 시작되면서 도시가 쇠락하고 다른 유럽 각지에서 카지노를 합법화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베네치아의 카지노는 역사의 저편으로 가라앉게됩니다.
A.D. 최초의 카지노 등장
A.D. 유럽 카지노의 황금기
A.D. 카지노의 심볼 "룰렛"의 탄생
A.D. 중세 카지노의 종식
베르사유 궁전을 중심으로 좌측에 루이14세, 우측에 마자랭 추기경
룰렛, 바라카, 블랙잭의 탄생
카지노는 베네치아에서 탄생했지만, 룰렛, 블랙잭, 바카라,처럼 요즘 카지노에서 인기 있는 카지노게임들은 1650년 이후 유럽안에서도 프랑스의 독특한 발상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 당시 프랑스 국왕은 도박을 허용했고, 베르사유 궁정의 삶에서도 도박은 없어서 안 될 필수 요소였는데요 처음 카지노 게임을 알렸던 마자랭 추기경은 기술적으로 승부하는 카드게임을 권장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큰 기술을 요구하지 않는 확률 위주의 게임이 인기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러한 게임의 증가는 귀족들의 몰락을 초래하게 됩니다. 독서를 통한 지식의 확장과 모임을 통한 사교성을 기르던 중세 프랑스의 귀족들은 카지노게임이 몰두하기 시작하며 이는 곧 주변 평민들에게까지 영향력을 끼치며 전 국민이 도박에 몰입했습니다.
- 당시 국왕은 루이 14세로 일각에서는 재상이였던 마자랭 추기경이 1648년 베르사유 궁전에서 프랑스 귀족들에게 도박을 알렸다고 전해집니다.
- 국왕이 공식적으로 도박을 허용하면서 귀족사회에서 도박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사교기술이 되었습니다.
- 국가에서 허락한만큼 당대 소설이나 드라마의 가장 인기 있는 주제또한 도박이었다고 하네요.
카사노바는 프랑스에 처음으로 복권을 소개한 인물이기도하다
태양왕으로 비롯된 도박이라는 어둠
1661년에 마자랭 추기경이 사망하고도 카지노는 계속해서 영향력을 키워갔으며, 한 역사가가 기술한 바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4분의 3이 카지노 생각뿐이였다고 합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당시 프랑스는 도박에 대한 법률이 굉장히 엄격했는데도(아마도 확률 위주의 게임에 대한 규제라고 생각됩니다) 국민들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고 1700년에 들어서는 일 년에 한 번씩 도박을 금지하는 새로운 법안을 만들었음에도 카지노는 대성황을 누리게 됩니다. 결국 1770년대에 이르러서야 정부는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카지노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두 가지 시도를 하게되는데 첫 번째는 1776년 국왕에 의해 설립된 "카사노바 복권 협동조합" 두 번째는 파리 경찰로부터 비롯된 "카지노 자격 심사 제도 및 세금법안"이였습니다. 이로인해 납부된 세금으로 공공시설에 대한 운영비를 충당하였지만 허가를 받든 받지 않았든 카지노의 규모는 계속 커져갔습니다.
1780년대 팔레 루아얄
카지노의 왕궁 "Palais Royal"
1780년대, 도박으로 갈때까지 가버린 프랑스의 카지노 열풍은 멈출줄 모르고 계속해서 그 열기를 이어갔습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카지노를 할 여유가 있다고?"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유흥과 범죄는 사회가 어려울수록 더욱 증가하게됩니다 1780년대 광기의 도박열풍 그 중심에 있던 곳은 프랑스의 왕궁 팔레 루아얄. 이 곳은 루이14세의 남동생인 오를레앙 공작의 소유지로 당시 소유주였던 루이필리프 2세는 매우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성격으로 수많은 재산을 가지고있음에도 카지노에서 고액베팅을 하다 파산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랬던 필리프였기에 이런 사치스러운 생활을 더욱 영위하기 위한 생각에서 나온 아이디어, 바로 팔레 루아얄 왕궁을 상업적인 목적으로 개조하여 아파트, 상가건물등을 임대놓았고 당연히 이곳에서는 수백개의 카지노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1793년 팔레 루아얄의 주인 필리프 2세 또한 혁명의 칼을 피할 수 없었는데, 그는 혁명당시 가장 많은 물자를 혁명군에게 지원하였으나 혁명이후 왕가 부활을 노리다 혁명군에게 적발되어 단두대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 필리프 2세는 왕족임에도 혁명군에게 장소와 물자를 아낌없이 지원한 인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 이러한 이유들로 국민에게 개방된 왕궁 팔레 루아얄은 이후 프랑스 혁명군의 집결지가 됩니다
- 프랑스 혁명 전 마리 앙투아네트는 팔레 루아얄에서 몇 주 동안이나 도박을 했다고 전해진다
Roulette - 숫자와 색상 조합을 통해 다양한 조합베팅이 가능하다
혁명속에서 피어난 카지노의 꽃 "룰렛"
필리프 2세의 사망 후 찬란하던 팔레 루아얄의 카지노는 관리국에 의해 5개의 카지노를 제외하고 모두 폐장되었습니다. 새로운 프랑스 정부는 이 5개의 카지노를 허가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폐장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는 도박에 대한 파리 국민들의 폭주를 해소하기 위해 남겨둔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이후 팔레 루아얄에는 새로운 게임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 게임은 바퀴 위에 여러개의 구멍을 만들고 여기에 17개의 구멍은 "홀" 다른 17개의 구멍에는 "짝"을 표기한 후 나머지 2개의 구멍은 뱅크를 표기하여 즐기는 홀짝 형식의 게임으로 1796년, 이 게임은 각 휠마다 검정색과 빨간색을 번갈아가며 칠하고 휠 위에다 번호를 새기게 됩니다. 이 게임이 바로 여러분이 잘 아는 "카지노 룰렛" 입니다. 이미 이 시기에 팔레 루아얄의 카지노 룰렛은 스트레이트업(Straight-Up), 빨강 혹은 검정(Red or Black)을 포함한 다양한 조합베팅이 존재했습니다
"혁명과 전쟁이라는 시대의 폭풍속에서도 룰렛의 휠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프랑스가 유행시킨 현대 카지노게임
룰렛
ROULETTE룰렛은 이탈리아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에 의해 발명되었습니다. 파스칼은 연속 운동에 대한 연구를 하다가 룰렛 휠을 발명했으며, 이 휠은 나중에 카지노에서 게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룰렛이라는 이름은 프랑스어로 "작은 바퀴"를 의미하며, 휠의 크기에서 유래했습니다. 룰렛은 회전하는 바퀴 위에서 볼을 굴리고 볼이 숫자가 새겨진 홀의 어느 숫자 위에 떨어지는가를 맞추는 카지노 게임입니다. 룰렛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카지노 게임 중 하나이며, 그 기원은 18세기 프랑스로, 팔레 루아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블랙잭
BlACKJACK일부 역사가들은 블랙잭이 18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게임은 당시 베인티우나(21) 혹은 뱅테욍이라고 불렸으며, 21점에 도달하는 첫 번째 플레이어가 승리하는 게임이었습니다. 블랙잭이라는 이름은 21점을 얻을 때 플레이어가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손인 A와 10의 카드 조합인 블랙잭에서 유래했습니다. 여담으로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도 유명한 겜블러였으며, 당시 블랙잭 게임을 가장 선호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바카라
BACCARAT바카라는 15세기 이탈리아의 도박꾼인 Felix Falguiere에 의해 고안되었습니다. Falguiere는 당시 인기 있는 카드 게임인 마카오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9에 가장 가까운 숫자를 내는 플레이어가 승리하는 게임이었습니다. 바카라는 이탈리아어로 "0"을 의미하며, 게임의 룰이 간단하고 카지노에 대한 이점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빠르게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후 16세기에 바카라는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넘어오게 되는데 당시 국왕이던 샤를 8세가 바카라에 흥미를 보이게 되며 급속도로 전파되게 됩니다.
나폴레옹 또한 카지노를 매우 즐기던 도박꾼이였다고 한다
프랑스의 도박 금지령, 혁명의 끝에서 사라지다
중세 프랑스 카지노 열풍은 어떻게 끝나게되었나?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혁명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인기있는 팔레 루아얄의 카지노의 이후 행방을 알아볼 필요가있습니다 1796년 룰렛이 카지노에 정착되고나서 더욱 인기를 얻은 카지노는 당시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의 관심을 끌었고 당시 합법 불법 가릴 것 없이 생기던 카지노에 대한 대책으로 나폴레옹은 합법 카지노를 개장하게 됩니다. 1806년 나폴레옹은 팔레 루아얄의 다섯 곳의 카지노와 그 인근 지역의 6개의 도박장을 합법화 하였는데 오히려 이런 카지노의 황금기가 지칠줄 모르고 지속되다보니 도박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심각해졌고 사람들은 도박의 위험성을 인지하기 시작하게됩니다. 결국 1837년 프랑스는 확률 게임을 영구적으로 금지시키는 법을 통과시켰고 이렇게 중세 유럽의 카지노 열풍은 사그라들게 됩니다.